인생도 우정도 바퀴처럼 둥글게…
“카 백!”(Car Back!) 뒤에서 사이클리스트들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줄맞춰 자전거를 타는 팀록을 응급차가 급하게 지나갔다. 7월 26일 IA 래그브라이 사이클대회 7일째, 마지막 날이다. 대회 나흘째인 22일 해발 7천여 피트의 산능선·시속 15마일 이상 강풍·90도 폭염 등 3중고 속에 대회 최장거리인 106마일(연장코스 포함) 완주에 이어 엿새째인 25일 새벽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로 팀록은 2번이나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이제 마지막 관문으로 해발 3천여 피트에서 시작돼 해발 6천5여 피트에 이르는 산능선을 2번이나 넘어야 한다. 인종은 달라도 마음은 누구나 같았다. 코스 걱정이 앞서서인지 어둠이 채 걷히기 전인 새벽 5시부터 숙소를 출발하는 사이클리스트를 제법 많았다. 대회 공식 시작은 새벽 6시였다. 팀록도 서둘렀지만 새벽 6시 반이 되서야 출발했다. 마지막 날 모두 안전을 기원하며…. 이번 대회는 강풍도, 바람 방향도 사이클리스트 편이 아니었다. 래그브라이 대회가 아이오와주 맨 끝 서쪽 타운에서 시작되는 이유 중 하나가 산능선 코스가 많아 사이클리스트 뒷바람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배려가 숨어있다. 그러나 올해는 대회 내내 맞바람과 싸워야 했다. 26일에도 역시 코스에 들어서자마자 맞바람이 팀록을 반겼다. 이제 엉덩이뼈의 고통은 무감각해졌다. 허벅지에 든든한 근육이 생긴 탓에 최대 시속 22~24마일도 달릴 수 있게됐지만 초보자에게 자만심은 금물이었다. 5마일을 달렸을까, 멀리 응급차가 보이고 사이클리스트들이 외치는 “천천히!”(Slow down!)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부러져 있는 사이클 옆에는 고통스런 표정의 50대 초반의 백인 중년 여성이 구조대원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젖혀진 왼쪽 다리 정강이 부분에서 언뜻 하얀색이 눈에 스쳐갔다.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은 팀록 회원 모두 같았을 것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이날은 실력에 따라 시속 40마일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는 6천5여 피트 산 정상에서 시작되는 내리막 길은 뒤 처진 시간을 만회할 수 있는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막 사이클을 입문한 초보에게는 넘어야 할 고비였다. 또한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도로 곳곳에 나 있는 팟홀과 중앙차선을 따라 콘크리트 도로를 연결시킨 타맥(tarmac: 포장용 아스팔트 응고제)이 떨어져 나가며 생긴 깊은 골은 사이클리스트 모두를 위협했다. 30마일 지점, 다른 생각에 잠시 빠져 있는 순간 사이클이 골에 빠지고 말았다. 털거덕거리면서도 속도는 시속 18마일을 넘어서고 있었고 도저히 초보 실력으로는 빠져나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넘어지는 것 이외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과 500마일 완주는 물거품이 됐다는 포기의 아쉬움이 몰려왔다. 비슷한 속도로 뒤에서 달려오는 사이클리스트들과의 추돌 그리고 부상에 대한 걱정도 스쳐지나갔다. 돌이켜 보면 10초도 안되는 짧은 순간이었다. “에이!”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에서 몸을 왼쪽으로 틀었다. 순간 기적같이 바퀴가 골에서 빠져나왔다. “굿 잡!”(Good Job!) 놀란 마음을 가다듬는 동안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 사이클리스트들이 계속 지나갔다. 해발 6천여 피트의 2번째 산능선을 넘자 멀리 도착지인 구텐베르그 시를 관통하는 미시시피강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오와주 서쪽 끝 마을 록밸리에서 동쪽 끝 구텐베르그까지 팀록은 1주일 동안 총 530마일을 달렸다. 편도 약 250마일(400km)인 서울-부산을 왕복한 셈이다. 시카고를 떠나던 7월 19일 새벽, 50을 훌쩍 넘어선 팀록 회원들이 부인들의 손에 이끌려 제각기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나타난 모습은 마치 30여 년 전 교복을 입고 수학여행을 떠나던 고교생들을 보는 듯했다. 이들 한인 중·장년들에게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계속됐다. 대회 내내 공동화장실을 써야 되는 탓에 생리 현상을 제대로 해결 못한 채 사이클을 타야 했고 앞서 달리던 회원의 방귀 소리에 “자전거 타며 방귀 뀌는 사람이 누구야? 대단해?”라고 소리치자 “당신도 해봐, 추진력이 생겨 앞으로 ‘쑹쑹’ 잘나가”라고 응수하며 서로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사이클 구력이 많은 리더들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 처진 회원들을 격려해 주며 팀 전체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고교 학창시절보다 얼굴에는 주름이 좀 더 생겼고 1주일 동안 면도를 못한 덥수룩한 수염 군데군데 희끗한 색이 보이기도 했지만 동료를, 후배를 걱정하는 ‘우정’은 그 시절 못지 않았다. 7월 26일 오후 3시, 한인 중·장년들의 1주일 수학여행은 막을 내렸다. 래그브라이 사이클투어 완주를 의미하는 미시시피 강에 사이클 앞바퀴를 담군 뒤 9명을 실은 RV는 가족과 일터가 기다리는 시카고로 향했다. 임명환 기자